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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바라보자
파일없음  nofile   2021-04-18 19


예수를 바라보자(Fix our eyes on Jesus)

히 12: 2-3



유진 중앙교회 주일 오전예배

4월 18일, 2021년



12장 1절은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히12장은 바로 앞 부분인 11장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장에서는 구름같이 둘러 싼 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말씀합니다.

11장은 아담의 아들 아벨과 가인,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훌륭한 믿음을 소개됩니다.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영도자 모세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한 이야기, 사사시대의 역사, 다윗과 사무엘 등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부족하여 다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상들에 관하여 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 들 중에는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심한 고문까지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조상들은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같은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이 세상 보다 더 나은 하늘의 본향이 있다는 믿음을 굳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믿음의 조상들은 구름 처름 둘러 싼 수많은 증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증인이란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을 사실대로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재판정에서 증인들의 증거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큰 역할을 합니다.

구약 시대의 수 많은 믿음의 조상들의 삶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가 행하신 역사를 사실대로 전해 줍니다.

이 사람들이 전해 주는 증거는 오늘 우리 들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해 줍니다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우리는 예배의 중요성을 알 게 됩니다.

에녹의 승천 기사를 통하여 성도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로 옮겨 가는 한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이란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있습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수종을 통해서 믿음이란 반드시 순종이 따라야 함도 배우게 됩니다.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매일 하루 한번씩,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 돌 때 그 성이 무너지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게 됩니다.

이런 역사를 통하여 오늘 날 우리 앞에도 수 많은 난관들이 놓여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완전히 순종하며 나아 갈 때 모든 난관들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라도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을 구약 시대의 많은 선지자들의 삶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34 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이 말씀은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히브리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가 눈을 고정시키고 바라 볼 자는 예수님이라고 지적합니다.

수 많은 구약 시대의 믿음의 조상들은 우리들에게 훌륭한 증인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눈을 고정시키고 바라 볼 자는 그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바라 볼 대상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주이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라보자”라는 말의 헬라어는 아포라오( ) 라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주목하다, 보다” 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주목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주목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는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성경의 원문에는 아르케이고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신약 성경 중 오직 예수님께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통치자”, 또는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삶의 통치자요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도자이십니다.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이 우리를 통치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행 3장 15절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라 볼 대상자는 우리의 인도자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실망시키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 분을 바라보는 순간 주님은 우리가 왜 주님을 바라보는 지를 아시고 우리를 구원의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자이실 뿐만 아니라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하십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텔레이오테이스() 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완성자”, “완전하게 하는 자”(Perfecter)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우리의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능력자이십니다.

우리는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 한 것 처럼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은 할 수있어도 실제 행동으로 그 말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완전하게 하시는 일도 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가리켜서 그는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설명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눈을 바로 뜨고 바라 볼 대상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으사”라는 말은 십자가를 벗어 던지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을 참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심히 고민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그 잔을 하나님께서 옮겨 주시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뜻은 십자가를 몸에 지시고 끝까지 참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참는 일은 고통을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참는 것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마지막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한 시간쯤 지고 내려와서 다시 살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 형틀은 사형수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죽음을 맞이할 각오를 가지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을 뿐만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부끄러움은 수치를 의미합니다.

부끄러움이라는 헬라어는 아이스퀴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수치, 불명예, 수치감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겪어야 할 모든 수치심과 모멸감을 다 당하셨습니다.

개의치 않으셨다는 말은 헬라어 단어로 카타 프로네오 ( ) 라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가볍게 여기다, 멸시하다, 경멸하다” 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아무리 강 심장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하는 그 사형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경멸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이 겪어야 할 수치와 부끄러움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주님은 죄인들이 당할 하나님 심판의 엄중함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을 당하시면서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멸시하셨을 까요?

구약의 선지자 이사는 메시야가 당할 고난의 종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 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께서 고난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경멸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누리게 하고 우리가 나음을 얻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구약의 수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우리를 구름같이 둘러싸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 보아야할 인도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눈을 바로 뜨고 바라 볼 대상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예수 그리스도는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에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는 아무나 앉을 수 없습니다.

왕좌에 앉을 자는 왕 외에는 없습니다.

왕만이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좌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앉을 수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앉으셨던 그 자리는 하나님의 보좌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리를 포기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없었습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누우셨던 곳은 베들레햄 구유였습니다.

나중에 자리를 잡은 곳은 갈릴리 어촌의 한 목수의 집이었습니다.

그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일생을 사셨습니다.

어느 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20 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주님은 한 마리의 여우만큼의 여유도 없이 사셨습니다

공중에 자유롭게 날다가 저녁이 되면 거처를 찾아가는 한 마리의 새만큼의 자유나 안정된 삶의 보호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실 동안 주님의 삶은 참으로 피곤한 여정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여 쳐다 볼 만한 아름다움도 없었습니다.

권력도 그를 피하였습니다.

넉넉한 물질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 조차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권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것은 자신의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30 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구약의 수 많은 위대한 어떤 선지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 분 만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실 수있습니다.

오직 그 분을 우리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를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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