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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넉넉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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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은혜

마13: 10-16



유진 중앙교회 주일오전예배

3월 12일, 2023년



부족함과 넉넉함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로 어려운 여건에 처하지만 넉넉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불휴의 명작 천로역정을 남긴 요한 번연은 감옥생활을 하면서 아주 힘든 여건에서 그 책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당대의 누구도 남기지 못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 책을 잃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 새로운 삶을 출발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책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읽혀질 만큼 그가 남긴 이 글은 온 세상에 풍요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저자 번연은 원래 넉넉한 귀족 가정의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628년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고 10세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잃고 16세에 의회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찰스 2세 때 종교 적인 탄압을 받아 예배를 왕의 허락없이 드렸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로 긴 감옥 생활까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밀턴과 함께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믿음에서 나오는 삶의 넉넉함을 보게 됩니다. 주인공 기독도의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가는 길을 조명하는 듯 하기도 합니다. 기독도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수많은 장애물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까다루운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넘어 가면서, 무수한 유혹을 받으면서도그는 중도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는 가난하였지만 가난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배움이 많지 못하였지만 한탄하지도 않았습니다. 권력이나 힘도 없었지만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갖 역경을 디디고 이겨내어 마침내 밝은 천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번연의 책이 세상에 나온 지가 벌서 400년이 가가와 오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절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부흥사 스펄존은 이 책을 100독 이상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넉넉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사는 동안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이라 눈썹에는 곰팡이가 났고 시력까지 어두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넉넉한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전해 주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 12)

이 말씀이 의미하는 “ 그 있는 것”이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번연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할 때 신부 메리가 가지고 왔던 청교도 신앙의 책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세상의 부요는 소유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과 열정은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힘을 더해 주었습니다. 설교를 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있던 믿음과 열정에 더하여 풍성한 영성을 가지게 해 주셨습니다. 가진 자에게 더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더욱 풍성하게 임하였습니다. 그는 천로역정과 같은 불휴의 명작 뿐만 아니라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전쟁’, ‘적그리스도와 그의 멸망’ 등 60여권의 책들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하였던 한 소년에게 주님은 그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열정을 보시고 더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넉넉한 은혜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은혜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넉넉함이란 의미는 풍성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모자람이 없이 채워 주심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였어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각 자의 마음의 자세,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잘 지키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감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했던 크로스비 여사는 자신의 간증을 곡으로 남겨 수많은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넉넉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일생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넉넉한 은혜의 삶을 누리는 자는

1. 지난 날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는 각자 받은 과거의 은혜를 소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 진 환경은 다릅니다. 배경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한국에서 육이오 사변 전에 태어나시기도 하셨고 전쟁 중에 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젊은 분들은 그 훨씬 훗 날 태어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던 각 자는 지난 날 받은 은혜를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를 좋은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과거에 누린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날 받은 그 은혜를 다시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던 날들은 언제 생각해도 마음 흐뭇하고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를 위한 헌신적인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늘 마음 속에 고마움과 감사함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입니다.

이 감사한 마음은 지난 날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이어집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 항상 아름답거나 평안할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쓰라린 과거가 기억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중한 병으로 고생한 과거라든가, 큰 사고를 당한 일, 파산의 절망, 혹은 잊혀 지지 않는 고통 등 각자의 과거는 여러가지 상념들로 채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의 조명의 빛에 따라서 평가는 달라집니다. 가령 아주 어려운 형편 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훗날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뚝 서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불우했던 과거를 결코 불행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도 자신의 과거를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불우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성공이 더 돋보이게 되고 지난 날의 고생은 오늘날 성공의 밑 거름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기사 중에서 요셉의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 마다 그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생스러웠을 까 연민의 정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불행스러운 어린시절은 그의 삶의 실패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일생을 두고 보면 오히려 그 어린시절의 시련이 위대한 요셉이 되게 하였고 훗날 그의 형들과 아버지를 구원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 버린 일에 대하여 훗날 형들에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지금 그는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으며 그의 전 가족들을 구원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오히려 소중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지난 날 그가 겪었던 어려웠던 일에 대하여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요셉의 생을 더욱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과거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 가, 어떻게 해석하는 가에 따라서 넉넉한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 개인의 삶도 그렇고 가족 단위의 삶도 그렇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28년간 걸어 온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평안하고 즐거운 때도 있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넉넉한 은혜를 경험하기 위하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지난 날의 고생을 기억하고 슬픔에 잠긴다면 넉넉한 은혜를 누리기가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과거 우리가 경험하였던 아픔을 딛고 일어 선 넉넉한 은혜를 감사할 때 참으로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기독교의 긴 역사나 미국 교회의 역사에 비할 때 역사가 짧다면 짧을 수 있습니다. 또 유진의 교포들의 정착과정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을 거쳐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리한 걸음을 내 디뎌야 하였습니다. 함께 교회를 섬길 일꾼들이 늘 부족하였습니다. 경험 많은 어르신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생각이 깊지 못했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늘 부족함을 느껴왔고 넉넉한 마음을 간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난 날의 힘들었던 날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 진 과제라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왔습니다. 우리는 멀리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를 거쳐가신 분들이 연락도 해 오고 다시 찾아 보고 싶다는 소식들을 접할 때 마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들 대부분은 우리 교회가 지금보다 더 어려운 형편 때에 지나간 분들이었습니다. 아직 예배당 건물이 없어서 조그만 건물을 세 내어 예배 드릴 때 거처간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 보고 싶다고들 말합니다.

그들 중에는 김한성씨, 이대식씨, 김성민씨 등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과거는 아름답게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에게 은혜스러운 과거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넉넉한 은혜의 삶은

2. 지금 믿음의 삶을 충실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집착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에 있었던 일은 잊어 버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여러가지 은헤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잊어버리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기 전에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어 버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헤입니다. 누구에겐가 들었던 서운한 말 한마디 때문에 밤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서운하게 들렸던 말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과거의 쓰라린 고통을 잊어 버리고 지금의 삶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는 반드시 넉넉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중에서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본문 중 ‘있는 자’라는 의미는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는 더 받아 넉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 받은 각양 은혜와 은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께 받은 믿음, 하나님의 사랑 등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받아 누리고 삽니다. 이런 것들을 지금 가지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은혜를 우리가 지금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께 받은 은혜가 수없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받은 부모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이었습니다. 먹는 양식, 입은 의복, 거처하는 집 등 수없이 많습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부모님의 뒷 바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받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간직하며 사용할 때 부모의 마음은 즐거운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필요로 할 때 더 베풀어 주려고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은혜를 고마워하고 잘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부모에게 거저 받은 것이라고 하여 아무렇게나 내어다 버리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부모는 매우 슬퍼할 것입니다. 더 좋은 것으로 베풀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중요한 뜻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간직하며 살아 갈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풍성하고 넉넉하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은혜를 깊이 감사하며 살아 갑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나와 주님을 경배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경청하며 마음에 새길 수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약속의 말씀대로 살기를 기뻐하는 마음을 주님은 참으로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넉넉하게 되”(12)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당연히 성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받은 은혜를 지금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도 약속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12)라는 말씀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전에 가졌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훌륭한 믿음 생활을 하던 분들도 있습니다. 매우 귀한 분들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현재 그 믿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넉넉히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런 사람의 믿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깊어지고 커집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더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을 후퇴시키는 분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각오도 하고 결심도 하여 주님을 따라 나서지만 후에 어려움이 닥쳐 올 때 주님을 떠나 버린 자들입니다. 그들은 받은 믿음을 지켜내지 못한 자들입니다. 가롯 유다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이 넉넉한 은혜의 삶은

3. 처음 보다 더 나은 믿음 생활을 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믿음은 생명체와 같습니다. 믿음은 생명을 간직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믿음 중에는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야고보가 지적을 했습니다. 그는 말씀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산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은 생명체와 같아서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합니다. 정물화처럼 항상 꼭 같을 수가 없습니다. 각자의 믿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점점 믿음의 복을 넉넉하게 누립니다. 욥은 말년에 받은 축복이 더 컸습니다. 처음에도 많은 복을 받았지만 그 때는 아직 시련을 겪지 않은 때라 그 믿음이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온갖 시련을 겪고 난 그의 믿음은 전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욥기 42:12 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이 말씀에서 주의 할 것은 믿음의 측도를 소유의 많고 적음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욥기를 보면 그의 믿음은 소유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훗날 그의 믿음이 성숙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 생활에도 끊임없이 변화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변화는 믿음이 성장하고 더 넉넉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믿음 생활이 좌우되지 않는 믿음이 넉넉한 믿음입니다. 만사 형통할 때에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힘들고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넉넉한 믿음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경고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에 다시 세상에 얽메이고 세상에 지게되면 그의 형편은 전보다 더 나쁘게 된다는 뜻입니다.

처음보다 더 나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작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가졌던 자라도 세월이 흐르고 그 믿음이 점점 자라게 되면 큰 나무와 같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믿음의 보호를 받고 그 그늘에서 안식을 누리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싶은 바람직한 목표는 우리의 믿음이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라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분량에 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들을 돌아 볼 때 지난 해 보다 올해의 믿음이 더 자라고 십년 전의 나의 믿음 생활에 비할 때 장성한 자의 분량에까지 자랐다면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넉넉한 은혜의 믿음은

1. 지난 날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2. 지금 믿음의 삶을 충실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3. 처음 보다 더 나은 믿음 생활을 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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