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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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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히 11: 13-16



8월 27일, 2023년

유진중앙교회 주일 오전예배



지난 주일에는 산을 옮길만한 믿음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산은 높고 크지만 그것을 옮기는 힘은 작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믿음의 힘은 크고 위대합니다.

오늘은 실제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살펴보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히 11장은 믿음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믿음으로 살아 간 여러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들도 후손들에게 믿음으로 살다가 간 선조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특별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믿음이 한 사람의 생애를 얼마나 변화시켰는 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세상의 거친 풍파를 잘 이겨내었습니다. 세상의 죄악에 깊이 빠지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역경이 있었고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들에게 정복당하지 않고 이겨 나갔습니다.

이같은 모습은 족장들의 역사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그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도록 부름 받았으며 우상 숭배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으로 인도함 받았으나 그 땅에서마저도 발붙일 만큼의 한 조각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곳에서 장막 생활을 해야 했으며 많은 시련과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불이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눈을 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도 믿음으로 세상을 살다가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만 믿음으로 산 것이 아니고 그의 후손들에게 이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고 떠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는 그 믿음이 어떻게 후손들에게 이어져 내려왔는 가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이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워 지면 여러가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살아 온 것을 정리하기 때문에 시간도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합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 때는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날이 닥쳐오기전에 하나 하나 준비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빚을 청산하거나 유산을 분배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에 진 빚을 조금이라고 갚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교민 한 분이 얼마전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어쩌면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평소에 빚을 진 분들에게 갚을 생각을 하고 값나가는 보석 반지들을 가지고 나가서 나누어 주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참 지혜롭게 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히브리서 기자가 들려주는 믿음으로 살다가 간 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1.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13)

우리 말 본문은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영문 번역을 보면 “All these people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다시 번역하면 이 사람들은 죽는 때에도 믿음으로 살아있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죽음의 권세를 이긴 자들입니다. 다시는 죽음이 그들을 가두어 두지 못합니다. 사망의 권세가 믿는 자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성도는 죽음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죽음이 그리스도인을 가두어 두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에 갇히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빚어진 몸과 하나님의 영으로 부여된 영혼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죽음은 이 흙 부분과 영의 부분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몸은 죽음과 함께 흙으로 되돌아 갑니다. 신자들의 몸도 흙으로 되돌아가고 믿지 않던 자들의 몸도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이점에서는 신자나 불신자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영혼은 어디로 갈까요? 흙과 함께 무덤에 갇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영혼은 그가 왔던 하나님께로 되돌아 갑니다. 신자들의 영혼은 당연히 본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그 영혼을 기쁘게 영접합니다. 반갑게 맞이합니다. 스데반의 영혼이 몸을 떠날 때 그리스도께서 스데반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서 그를 환영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영광스러운 하늘의 빛을 보고 기쁘게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받게되는 축복입니다. 그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이유가 그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광채가 스데반의 얼굴에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의 죽음이 복되다고 했습니다. 죽음은 저주가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는 혼인 잔치와 같은 예식이 성도의 죽음입니다. 믿음으로 산 자의 마지막은 참으로 복된 종말입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았던 사람들의 종말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의 몸은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고향으로 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영혼입니다. 그들도 이 세상에 올 때 하나님은 생기를 불어 넣어 각기 몸에 영혼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 영혼은 몸을 주관하며 일생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영혼에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들은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문제는 죽음의 순간입니다. 몸은 돌아갈 무덤이 있지만 영혼은 들어 갈 하늘 나라가 예비되어 있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 영혼들이 들어 갈 곳은 무저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계지지 않는 곳, 멸망의 장소입니다. 그 영혼들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은 고통입니다. 절망입니다. 희망의 빛이 없습니다. 소망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곳을 벗어 나올 길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2. 이 지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3).

여기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말은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터를 딱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영원히 살집은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낯선 “외국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기도 하고 한 곳에 평생을 살아도 영원히 살 곳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족들의 묘지를 구입하면서 헷족속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야곱도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이와 같이 믿음의 조상들은 이 세상에 살 때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증오와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나그네들은 외인세를 지불해야 했고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정처없이 옮겨 다니는 삶도 결코 편안한 삶이 아닙니다. 여행자는 머무는 곳에서 또 떠나야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곳에 영원히 살 지 못합니다.

여행자는 평안히 쉴 수 없습니다. 나그네임을 항상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런 삶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 생애를 낯선 이국 땅에서 외국인과 거류자로서 순례자요 나그네로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산 것은 그들이 소망하는 나라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신학자 클레멘트는 “이 땅 위에는 우리 신자들에게 조국이 없다”라고 말했고 칼타고 출신의 교회 저술가 터툴리안은 신자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는 이 땅위에서는 나그네일 뿐 자신을 확보하는 지위는 저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성자 어거스틴은 “우리들은 조국에서 추방된 나그네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던 목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레이컨이라는 장로교목사요 에딘버러 대학의 총장을 지낸 분입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직접 죽을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여관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고향을 향한 여정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그의 말 대로 워비크레인에 있는 “벨”이라는 여관에서 74세의 나이로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평안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자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을 영원히 살 곳으로 착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잘 준비된 사람은 그 날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만날 소망을 마음에 품고 맞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3.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

여기 “더 나은 본향”은 저 천국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두 본향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요, “더 나은 본향”은 우리가 장차 가서 살 영원한 천국 본향입니다.



지상의 본향은 눈에 보이기는 하나 잠깐 있다가 없어질 세상이요, 하늘의 본향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은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믿음의 선진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더 나은 본향이라는 의미는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나라임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합니다. 온갖 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우리가 실감하고 있습니다. 홍수 아니면 화재로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하와이가 최근의 화재로 지옥처럼 변했습니다. 공기 좋은 곳으로 자랑스러워했던 오레곤도 지금은 공기가 연기로 건강을 헤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도록 하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왕으로서 온갖 호강을 누리던 다윗 왕도 소망을 이 세상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73:25).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참된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이 소망입니다. 그 분이 예비한 나라가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그 영화롭고 아름답고 크고 웅장한 하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나라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



결론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1.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13)

2. 이 지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3.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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