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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eugenepds1561694319550.pdf   2023-09-10 31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Good trees bear good fruit

마7:15-21



유진 중앙 교회 주일오전 예배

9월 10일, 2023년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가로수 잎의 색갈이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멀리, 가까이 산들을 덮고 있는 나무들이 화려한 채색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금년 가을에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낙엽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단풍의 아름다움은 그 의미가 큽니다. 왜냐하면 나뭇 잎 하나 하나는 긴 여름 동안 나무의 성장과 열매에 필요한 영양 공급의 역할을 충분히 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 잎이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기 전에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게 하는 단풍의 역할은 우리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떨어지는 단풍 잎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일생의 마지막 날에 단풍 잎 처럼 우리의 사명을 다하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운명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년 전에 교포 한분께서 81년의 삶을 마감하고 조용히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 분이 마지막으로 맑은 의식으로 하신 말씀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 분은 다시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집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 하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곁에서 도움을 베풀어 준 데 대하여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해 주었습니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멀리 한국에서 달려온 동생 분을 잘 도와 주어서 고마웠이고 앞으로도 계속 잘 도와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는 그 날 저녁에 갑자기 의식이 사라지고 이틀 간 조용히 누워 계시다가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가까우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될 수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앞으로 일년 후나 십년 후의 일을 생각하고 걱정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가을 단풍과 함께 우리를 기뻐게 하는 것은 향기롭고 맛 좋은 열매를 거두는 일입니다. 각종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히는 계절입니다. 우리 농장에도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우리의 입맛을 돋구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각자의 삶에도 그 열매를 맺는 때가 옵니다.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고 떠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각자의 삶의 방향과 목적에 따라서 남기는 것은 각각다를 것입니다. 훌륭한 자녀를 잘 키우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많은 재산을 물려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명예를 남길 수도 있고 좋은 가문의 전통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 주고 하나님의 나라로 먼저 들어갈 수도 잇습니다.

일생을 살고 어떤 것을 남기느냐 하는 것은 어떤 열매를 남기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수원에도 여러 종류의 과수들이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이 되면 각기 열매들을 맺습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나무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일생을 살고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 평생 살아오면서 준비 해온 일생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매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 1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6)



본문에서 말씀하는 나무는 우리 각자의 삶의 나무, 즉 일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과수원에 심겨 진 나무와 같습니다.

과수원의 농부가 부지런히 과목을 보살펴서 물도 주고 거름도 주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평생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가믈 때는 물도 주시고 영양이 필요할 때는 거름도 주셨습니다.

병충해가 공격할 때는 막아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일생동안 건강하게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인생의 가을이 올 때 어떤 열매를 맺는 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삶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우리를 지으시고 길러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큰 기쁨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나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나무와 열매와의 관계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좋은 나무는 그 열매로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무가 아름답게 자랐어도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좋은 나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에게 필요한 것은 열매를 잘 맺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을 통해서 좋은 열매를 맺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그가 참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됩니다.

판단의 근거는 말이 아닙니다.

열매입니다.

주님께서 어느 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날 시장하셨던 주님은 무화과 열매를 몇 개라도 얻고 싶었습니다.

마침 성전 가까이 한 그루의 무화과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나무의 크기라던가 잎이 무성한 것을 볼 때 분명히 열매가 있음 직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잎도 무성하고 나무도 큰 데도 불구하고 열매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매우 실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이것은 단지 나무를 나무란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호세아 9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호9:10)



주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기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주님의 기대를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수원의 주인은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하여 정성을 쏟아 보살핍니다.

흙을 부드럽게 해 주기도 하고 거름을 주기도 합니다.



잡초가 땅의 거름를 뺏지 못하도록 제거합니다.

가믐이 들지 않도록 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관리를 잘 하는 것은 그 나무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보셨던 무화과 나무는 잎이 무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더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서 살펴 보니 기대하던 열매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기대가 크셨던 만큼 실망감도 더욱 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정성은 지극하셨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도 이스라엘 백성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라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들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을 번영하게 하셨습니다.

다만 한 국가를 만든 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모세를 보내셔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약속 대로 그리스도,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게 메시야를 보낸 경우가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영접하고 환영하며 그에게 순종해야 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대와는 정 반대였습니다.



주님께서 무화과 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지 못하시고 그 나무를 책망하신 것은 주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랑하는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된 것이나 율법을 외우고 의식을 행하던 그들에게 찾았던 진정한 좋은 열매는 없었습니다.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는 그 나무가 열매를 잘 맺느냐 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아무리 좋은 땅에 심은 나무라고 하더라도, 훌륭하게 자라고 잎이 무성하다고 하더라도 만일 시절을 따라서 열매를 맺지 아니한다면 주인은 그 나무에 도끼를 댈 수 밖에 없습니다.

땅만 버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항상 기회가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가 심판의 때가 온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많은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 순간 한 순간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2.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17)



마찬가지로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시 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 열매를 바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에서는 가시를 내고 엉겅퀴에서는 톱날과 같이 찌르는 가시를 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젖 붙임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도록 젖 붙임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서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돌 감람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먹지도 못하는 열매를 맺는 좋지 못한 나무입니다.



이 돌감나무에 아무리 좋은 거름을 듬뿍 주고 물을 주어 훌륭하게 자라게 하여도 맺는 열매는 돌 감람나무 뿐입니다.

스스로는 다른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는 좋은 열매를 맺는 참 감람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붙여서 생명을 이어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와 같이 과거에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돌 감람나무와 같았던 자들이었는 데, 그리스도와 연합이 됨으로 참 감람나무에 젖 붙임을 당하였다는 뜻입니다.

그에게 비로소 좋은 열매를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에게 연합이 된 자들입니다.



비록 우리의 본성은 죄로 물들어진 악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신령한 연합을 하였으므로 이제는 옛 죄에 물든 사람은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된 거룩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이제 달라지게 됩니다.

과거에는 좋아하던 것들은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싫어 하던 일들이 이제는 좋아지게 됩니다.



이 체험을 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Philippians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이렇게 큰 변화를 합니다.

그의 생각이 바뀝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사는 목적이 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내 자신을 위하여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를 구원해 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에는 이 세상이 삶의 끝인 줄 알았는 데, 이제는 우리의 지상의 삶은 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지상 위주의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하늘 나라를 위주로 하고 살게 된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푸른 청산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흐르는 생명수 강가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부터 우리 자신을 우상처럼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은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킵니다.

주님을 위하여 날마다 죽습니다.

내 고집을 세우려 하지 아니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날 때부터 이기적인 성품을 물려 받았습니다.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습성이 있습니다.

오늘 이 지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건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죄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밝히고 있는 인간의 악한 성품가운데 오늘날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사건들의 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요즘 미국 사회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살인 사건입니다.

생명 경시는 하나님께서 중히 여기는 생명의 존엄성을 도전하는 일입니다.



테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이 외에도 바울사도가 지적한 여러 종류의 죄악들이 있습니다.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악한 성품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과 연합된 자들입니다.



3. 좋은 나무는 좋은 관리가 필요합니다(21)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성도가 좋은 열매를 맺기 까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좋은 관리가 필요합니다. 좋은 관리란 믿음생활을 실천적으로 하기 위한 훈련과 순종의 삶입니다.

좋은 믿음생활을 위하여 실천적인 훈련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좋은 믿음은 훌륭한 이론과 함께 실천적인 삶이 뒷바침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단지 이론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좋은 믿음 생활을 위하여는 열심히 기도도 해야하고 성경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여기에 그쳐서는 부족합니다.

믿음은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7:21널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머물고 맙니다. 이 사람들은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지만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주님을 찾는 데 그칩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21)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은 먼저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입니다.

그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살기 때문에 그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주장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일생을 달려갑니다.

그에게 최대의 기쁨은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고난 받기를 아주 즐거워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기뻐합니다.

그에게 최대의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이 말씀은 최상의 사랑의 대상은 어떤 사람이나 물질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칠 때의 바로 그 심정입니다.

우리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항상 자신 밑에 하나님을 두려고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아니라 자신 제일주의로 살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이고 그 다음 차례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사람, 즉 자연인으로서는 당연할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우선 살고 나서 다음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믿음의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첫번째 자리에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그는 주님 앞에 설 때 이런 칭찬을 듣습니다.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결론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훌륭한 성도는 좋은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나무와 좋은 열매는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그 관계는



1. 좋은 나무는 그 열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2.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17)

3. 좋은 나무는 좋은 관리가 필요합니다(21)

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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