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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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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수14:6-12



유진 중앙 교회 주일 오전 예배

9월 17일, 2023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직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셔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제비를 뽑아 거주할 지역을 분배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각 지파별로 그들이 들어가 살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거주할 땅을 동,서, 남, 북으로 경계를 지어 주었습니다.

남쪽의 경계는 사해로 부터 애굽의 경계까지였습니다.

동편의 경계는 남쪽의 사해로부터 요단의 끝까지 였고 북쪽의 경계는 요단의 끝에서 북쪽으로 르바임 골짜기 북편 끝과 바알라산과 얍느엘에 까지며 서쪽의 경계는 대해, 즉 지중해였습니다.

땅을 분배 받은 각 지파는 땅을 관리하고 다스리며 곡식과 과수를 가꾸어 지파의 백성들이 윤택한 삶을 누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 동안 이방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라 곳곳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때로는 전쟁도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장자 르우벤 지파가 받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와 헤스본의 평지와 주변의 성읍들이었습니다.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 간에는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거주할 동안 가나안 땅은 아모리족속, 모압 족속등 여러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영토분쟁이 계속되었고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되 돌아 갈 곳은 애굽입니다.

그러나 애굽이 그들을 환대할 리가 없습니다.

만일 돌아간다면 전 보다 더 혹독한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애굽이 아니라면 그들은 돌아 갈 곳이 없는 유랑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차지한 곳이라도 언제 주변의 이방 사람들이 침략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손에 쟁기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같은 자들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는 끊임없는 영적 전쟁을 각오해야 합니다.

성도가 들어 서 영원히 안정적으로 살 곳은 하늘의 가나안 즉 하늘나라 입니다.

성도에게 이 세상의 일생은 나그네의 삶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전쟁터와 같습니다. 세상의 세력이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무너뜨려 자기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의 세력에 정복을 당한다면 세상의 종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종이 된다는 것은 온갖 불행한 일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물질의 종이 될 것입니다.

평생토록 무엇을 먹을 까 마실 까 하는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종이 되면 사람들의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달려가는 넓은 길로 함께 달려 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 세상의 부질없는 영화를 평생 좇아가다가 결국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하고 허무한 삶을 끝내고 말 것입니다.

이 영적인 전쟁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죄 속에서 살다가 죄 가운데서 삶을 끝내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소망이 없습니다.

내세의 구원의 희망도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각 지파별로 땅을 정해 주었습니다. 분배를 받은 각 지파들은 그 땅을 차지하고 땅을 개간해서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전쟁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만일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땅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반드시 이겨어야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인 싸움을 하여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리고 그는 이렇게 권합니다.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갈렙의 용맹이 돋보입니다.

그는 나이 40 세 때에 모세의 명을 받고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파송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성실하게 모세의 명대로 가나안 땅 곳곳을 정탐하고 그가 본 그대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다른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부정적인 보고 만을 하였을 때도 그는 신앙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살펴 보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능히 점령할 수있다는 보고를 한 바있습니다.



수 14장 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으로…”

이 귀절 중에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영문 번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I followed the Lord my God wholeheartedly…”



이 귀절을 다시 번역하면 “나는 나의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랐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의 고백과 같이 갈렙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행히도 신앙적이고 긍정적인 갈렙의 보고는 묵살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열 정탐꾼들의 불 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낙심에 빠져 통곡을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되돌아가 광야에서 40년간을 방황하는 불행스러운 역사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으며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갈렘과 함께 정탐을 하러 나갔던 사람들이 그 40년간의 광야 여정 동안 다 죽고 말았습니다.

남은 정탐꾼은 갈렙과 여호수아 뿐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신앙적인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 보았고 그들은 반드시 그 땅을 차지할 수있을 것을 확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이 두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갈렙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이미 갈렙은 팔순을 넘겼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귀감을 줄 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큰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이런 요청을 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14:12)

산지라는 말은 평지가 아니라 산악지대를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편하게 개간할 수 있는 평지를 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산악 지대를 선택하였습니다.

산악지대는 여러 면에서 좋은 땅이 못됩니다. 우선 땅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설령 차지한다고 하여도 그 땅을 개간하고 쓸만한 땅으로 만들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나이 젊은 청년들도 이런 산지 보다는 비옥한 평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세상에 그는 오히려 85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산악 지대를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가 산지를 달라고 할 수 있었던 용기를 가졌던 것은



1.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편안하게 취할 수 있는 평지를 마다하고 험한 산지를 요청할 수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취할 수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드시 산지라도 취할 수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40년 전에 처음으로 가나안을 정탐할 때도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어떤 두려움도 이겨내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서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도 바울이 온갖 난관을 겪으면서도 전도자의 삶을 계속할 수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는 신앙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은 세상을 이기는 힘을 더해 줍니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 온다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한 믿음으로 맞서 싸웁니다.



그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지 만 우리를 기다리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나아가는 길 위에 빨간 양탄자를 깔고 환영하는 세상은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험준한 산악지대와 같은 길이 우리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아니하는 안개로 자욱한 새벽 길 처럼 한치 앞을 내어다 볼 수 없는 일들이 우리를 가로 막는 일들이 비일 비재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두려움에 빠집니다.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 않습니다.



갈렙이 성격이 강해서 산지를 선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지를 선택할 수있었던 것은 오직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신앙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능히 이기고도 남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확고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약속은 “세상 끝날까지”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고아처럼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약하다고 버리시거나 모른채 하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은 더 강한 팔로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음으로 얻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앞에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헤쳐나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느 신앙 깊은 미국인은 자신의 두 아이들 외에 한국에서 세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왔는 데, 세명 모두다 정상인이 아니라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의 하나는 언챙이었습니다.

그러나 몇차례에 걸쳐서 수술을 받게하고 그에게 교육을 시켜서 훗날 훌륭한 테라피스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잘 아는 분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고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산지를 정복하는 갈렙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가 산지를 달라고 할 수 있었던 용기를 가졌던 것은

2. 산지를 정복하는 어려움을 각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산지라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12)



그는 산지가 정복하기 쉬운 곳이기 때문에 그 곳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산지의 주민들이 얼마나 강한 사람들이며 성읍들이 크고 견고한 곳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그에게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잘 모르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일신상의 편안함 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험하고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각오를 하고 그 쪽으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 일을 해 내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사명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일과 다른 점입니다.

이 세상의 직장은 대가를 받기 때문에 가집니다.

사업을 하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갈렙은 산지에 살고 있던 거인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산지에 세워져 있던 크고 견고한 성읍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요청한 것은 그 산지를 반드시 정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요청입니다.

그만큼 그는 믿음으로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들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역사를 움직여 온 사람들은 두려움 앞에서 담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사용하신 인물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연약한 여성이었던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위태로워 졌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에스더를 통하여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될 위험 앞에서도 다니엘은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각오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헤치지 못하도록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시편 31:24)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그의 자녀들이 강한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온실안의 화초는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이고 잎이 싱싱한 건강한 꽃 처럼 보이지만 비 바람 앞에서는 힘없이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비,바람을 맞으며 어렵게 성장한 꽃나무는 비 바람이 치면 더욱 튼튼하게 자라고 꽃을 피웁니다.

야생화초는 온실에서 기른 화초보다 훨씬 강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광야에 세워진 교회 같습니다. 그러므로 강합니다. 세상을 대하여 강합니다. 환난과 핍박 앞에서도 강합니다.

어려움 앞에서도 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강하신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9년 동안 참을 많은 시련도 겪었고 연단도 받아 왔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어려워 지고 성도들의 숫자가 줄어 들 때 놀랍게도 우리 교회는 더욱 강했습니다. 세상은 머리 수를 보고 계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감수하는 어려움을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함과 고난과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과 열망이 우리 교회를 강하게 붙잡아 주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모릅니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

3.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14장 마지막 절인 15절 마지막 부분에 짤막하게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짧은 한 귀절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14:15 하반절)

이 말을 다시 하면 그 땅에 평화가 찾아 왔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가나안 땅 산지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한 귀절이 기록되기 전까지 많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평화는 거저 찾아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평화가 아직 임하기 전에 갈렙이라는 위대한 장군이 죽음의 위험을 무릎쓰고 산지를 선택하여 나아갔습니다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그 땅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날마다 전쟁으로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땅은 피폐해 지고 민족은 생존마저 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렘의 용맹한 결단으로 말미암아 나라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갈렙 앞에 머리가 숙여 지는 것은 그가 산지로 나아갈 때는 청년의 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85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웬만하면 집안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힘들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청년보다도 더 용맹스러웠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으로 나라 전체가 평화로운 나라로 변하였습니다.

갈렙의 헌신과 희생은 나라를 살려 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렙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의 용기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큰 축복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것은 전쟁을 물리치고 평화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전쟁 대신에 평화를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53:5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자신은 무한한 고통과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상함도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우리를 헤치는 사단의 무리가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모든 일을 해 놓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평화는 값없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결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떠나서 험한 산지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몸을 던져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거저 온 평화가 아닙니다.

가장 고귀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85세의 나이로 산지를 탈환한 갈렙의 헌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 큰 평화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결론입니다.



갈렙이 85세의 나이를 극복하고 산지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1.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 산지를 정복하는 어려움을 각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가 얻은 축복은

3.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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