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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 중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합시다
 eugenepds1731707022370.docx   2024-02-04 8


고난 중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합시다

약 5:13-18



유진 중앙교회

2월 4일, 2024년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 형편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말씀해 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런 여러가지 형편에 처할 수 있스비다.



첫째, 고난 당할 때

둘째, 즐거운 일을 맞이할 때

셋째, 병이 들 때



이상의 세 경우는 누구라도 겪게 되는 삶의 한 부분들입니다.



이 세가지의 경우는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각기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고난 당한 자가 더러 있습니다.

물론 또 즐거워하는 자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또 병중에 고생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엄밀한 의미에서 다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고난 중에 있거나 즐거워하는 자이거나 병 중에 있거나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1)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여기에서 말하는 고난은 일반적인 의미의 고난인 바, 특별히 어려운 궁지에 빠져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고난은 물론 육체적인 고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정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에 더 가깝습니다.

사실 고통과 고난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육신의 고통도 감당키 어렵지만, 더더욱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육신적인 고통은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농부의 땀 흘리는 고통은 해가 지면 그것도 그칩니다.

파수꾼의 고통도 해가 뜨면 그만입니다.

질병 때문에 앓는 고통도 약을 먹고 나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은 그보다 더 크고 아픕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만민의 죄과를 대신 짊어지는 고통이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총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육신의 고통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자들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이길 수 있는 길을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인간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 일지라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크기도 아시고 우리 인간의 약함도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고난의 원인도 아시고, 처방도 아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처방은 완전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고난을 심부름꾼으로 보내셨습니다.



골고다는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장소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어부가 싸우는 곳은 풍랑이는 바다입니다.

장군의 용기를 시험하는 곳은 전쟁터입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는 장미꽃을 모을 수 없습니다.

나무로 하여금 뿌리를 깊이 뻗게 하는것은 폭풍입니다.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되고 맙니다.

성한 조개에는 진주가 없습니다.





이세상 어디에도 고통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이세상 그 어디에도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이세상 어떤 곳을 가도 가시 없는 왕관은 없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 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 중에 무력한 우리 인간이 할 일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기도하면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는 난처한 상황을 제거해 주실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고통스런 상황가운데서도 능히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면케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바울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바울에게는 감당키 어려운 육체적인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자기에게서 떠나기를 거듭거듭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의 응답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





(2)즐거워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초대교회는 찬송하는 교회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그들은 항상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회답하며 찬송했습니다(엡5:19).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롬15:9).



순교자 빌리는 속죄의 은혜의 신비를 터득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때 찬송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비두니아의 총독 플리니는 주후 111년에 로마의 트라얀 황제에게 그리스도교라는 신흥종교에 대하여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날에 새벽부터 모여서 집회를 가지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번갈아 찬미하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다”



다윗은 성전 예배시에 4천명의 찬양대를 동원하여 장엄한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교회도 처음부터 찬송을 불렀습니다.

바울 사도는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도 큰 소리로 찬송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찬양을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그의 크신 자비를 기억하면서 감사 찬송하며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노래하는 종교입니다.

무신론과 불가지론에는 노래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도대체 노래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이 잘못되어질 때 진심으로 노래한다면, 여의치 못한 상황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찬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의기 소침해 있을때 찬양해 보세요. 밝은 빛이 비쳐 옴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전후좌우가 캄캄하다고 생각될때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을 찬미해 보세요, 옥터가 진동하는 것 같은 서광이 임할 것입니다.





(3) 병중에 고생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중에 병든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14).



여기 병든 자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연약한 자나 연약한 믿음을 가진자 라고도 말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육체적으로 병든자를 지칭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관례는 신체적인 병자에 대하여 기름을 붓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병든 사람들일지라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게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일생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가장 좋을 터인데 불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늘 병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병이 생깁니까?

이 질문은 흔히 듣는 물음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 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 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죄와는 상관없는 병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 했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위대한 메시지를 알리기 위하여 나사로에게 죽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나사로의 질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 지기 쉽습니다.

이런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실제로 병 중에서 기도하여 낫게 된 경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의학 연구팀은 기도의 위력을 입증하고 환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캔디 건터 브라운 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에는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동참하였고 청각장애인 14명과 시각 장애인 11명을 참여시켰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1분에서 15분 최장으로는 한시간 정도의 기도시간을 가진 후에 환자들의 상태를 측정하였습니다.

실험 참가자 중 청각장애자 11명 전원의 청력이 놀랄 정도로 향상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청각장애자 2명은 기도후 50 데시빌의 낮은 소리를 들을 수있게 되었고 시각장애 참가자 3명도 기도 전에는 겨우 빛을 인지 할 수 있는 20/400 수준에서 20/80 수준으로 시각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 연구팀은 말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실제로 낫습니다.”



우리는 실험해서 얻은 결과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낫게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오늘 우리본문 14절 말씀을 함께 읽읍시다.



“너희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병든 자들을 방문하고 기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의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합니다.

사실상 초대교회는 환자들에 대한 관심도 많았을 뿐아니라 교회 안에는 기초의약품 정도는 비치하고 치료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은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의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기름이 많은 경우 의약품으로 쓰여졌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사회에서나 유대인 사회에서의 공통적인 풍습이었으며, 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으로 쓰여졌습니다.

이와 같은 치료는 물론, 교회의 지도자들은 환자를 방문하여 병자의 치료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본문 14절 말씀은 의약품의 사용이나 치료는 물론 또한 기도할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병을 고치시기도 하시고 기도를 통하여 낫게도 하십니다.

약물을 통하여 고치시기도 하십니다.

훌륭한 의사를 통하여 고치시기도 하십니다.

의술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은혜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병자가 의사의 치료를 받는것이 신앙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모세는 마라의 쓴물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나뭇가지로 고쳤고(출15:25), 이사야 선지는 히스기야왕의 종처를 무화과 반죽을 발라 낫게 했습니다(왕하20:7)

믿음의 사도 바울은 병으로 고생하는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말고 네 비위와 자주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



당시에 가장 인기있는 의약품은 기름과 포도주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의학적인 수단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도 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눅5:31).

사도바울이 평생 의사 누가와 동행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의사 중에 유명한 암브로스 파레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진료실 앞에 이런 글을 써 붙여 걸었습니다.

“나 의사 파레는 상처를 치료하고 하나님은 병을 낫게하신다”

의사는 부분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지만 병을 근본적으로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치료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2) 즐거워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3) 병중에 고생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중에 병든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14).

고난 중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합시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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