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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능하신 하나님(The Almighty God)
파일없음  nofile   2020-03-22 333


전능하신 하나님(the Almighty God)

출6:1-9



유진 중앙 교회 주일 오전 예베

3월 22일, 2020



지금 온 세상은 코로나 사태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있고 목숨까지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힘으로 막아 낼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모세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수있었던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불 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를 찾아가서 그 뜻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께 제사를드리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말씀듣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백성 탄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악행들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을 받는 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있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바로처럼 되기가 쉽습니다.



만일 바로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상은 많이 알았고 섬겼습니다.

참 하나님에 관하여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다윗은 말합니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 위대함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전능이란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이 말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지게 한다는 독재자도 전능자가 될 수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단어 “샤다이”( )라는 “전능자”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단어입니다.

영어 단어로는 almighty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 샤다이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칭호입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전수된 사도 신경 첫 마디가 “전능하사” 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삭은 아들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28: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3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창 17:1) 이삭과(창 28:3) 야곱에게(창 35:11, 창 43:14, 창 48:3)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도 하시고 예언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행하시는 세가지의 일들을 말씀합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 언약을 기억하신다고 하십니다(5)

신음이란 말은 괴로움을 의미하는 단어 네아카()입니다.

괴로움이 심해 지면 그 아픔을 말로 다 표헌하기 어렵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신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점점 박해가 심해지자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괴로워 하는 소리를 듣고 계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없습니다.

듣는다라는 말 샤마() 말은 단순히 귀로 듣는다라는 의미 외에 귀기울여 경청한다라고 하는 의미(listen to)도 있습니다.



이 말의 대표적인 세가지 사용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① '경청하다' listen to, '주의를 기울이다' pay attention,

② 기도에 응답하다' answer prayer, '듣다' hear

③ 이해하다' understand,,



삼손의 어머니 마노아가 기도할 때 그 기도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여 들으셨습니다.(삿 13:9)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대로만 다 들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어떤 자의 기도일까요?

미가서 7장 7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My God will hear me.)



미가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그 자신은 이미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스스로 귀기울이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의 기도를 진실로 들으시십니다.

시 94:9 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않으시겠느냐?".

맞습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귀를 만들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듣는 것의 의미를 먼저 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같이 소리를 들어도 그 의미를 모르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집안의 기르는 개와 고양이의 소리를 들을 때, 집안 식구는 그 의미를 파악합니다.

그러나 낯선 이는 무슨 뜻인 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음성은 항상 하나님께 상달이 됩니다.

그의 기도가 보좌 앞에 상달됩니다.

그의 찬양이 하나님의 귀에 들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음성이 성도의 귀에 들립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슬픔도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때로는 세미하게 들려오지만 성도에게 들릴 때는 천둥 번개처럼 강력하게 들려옵니다.



성도의 조용한 기도소리도 하나님께는 크게 들립니다.

골방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기도소리가 하나님의 귀에는 큰 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귀는 가장 예민한 소리의 감각이 있어서 성도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소리까지 놓치지 아니하시고 다 들으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하나님께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간에 그 마음을 주님께 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앉고 일어섬을 아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헤아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다음에 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5절 하반절에 보면 “…신음 소리를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음 단계는 약속을 기억하시고 행동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약속을 중시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킵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속하신 두번째 말씀은



2. 그의 백성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이 귀절에서 하시는 말씀 중 첫번 째 약속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빼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일은 당시 바로왕의 위세를 생각한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바로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몇 차례씩 약속을 어기고 마음을 바꾸곤 합니다.



내 보내겠다고 장담했다가도 상황이 바뀌어 지면 다시 마음을 바꾸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성도에게 대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이 세상은 성도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습니다.



사단은 손아귀에서 성도를 놓아 보내주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의 종으로 잡아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속량하여 주십니다.



편 팔이라는 말은 손을 뻗는 것을 의미합니다. 팔을 쭉 뻗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하여 손을 내밀어서 잡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하실 때 그 긴 팔을 하늘에서 내려 잡아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사50:2)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팔을 뻗어서 우리를 붙잡아 구해 내시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심판으로 악인들을 제어 하십니다.



본문 6절 중에서 “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여기 재앙이라는 말은 세페트( )라는 말인데 그 뜻은 '재판, 심판 judgment'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심판하십니까?



백성들을 내어 보내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던 바로왕과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열가지의 재앙이 바로 그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전 애굽에 내려졌습니다.

바로는 애굽을 대표하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이유를 본문 7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소유를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단은 자기의 소유로 삼으려고 합니다.



자기 소유로 삼으면 자기 마음대로 성도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단을 위하여 일하도록 합니다.



악을 행하도록 부추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세상 여러 민족과 사람들 중에서 지명하여 불러 내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선택하여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아시고 지명하여 불러 내 주셨습니다.



7절에 기록한 빼어낸 이란 단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야차(  )라고 하는 히브리 말입니다.

그 의미를 보면 나가다, 나오다, 떠나다, 앞으로 가다, 나가게 하다, 이끌어내게 하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된 우리들을 이 세상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이 세상에서 구원해 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해서 불러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들로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값없이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내시기 위하여, 그 팔을 펴시기 위하여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미가 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쳐 주고 사 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저 사단의 손에서 뺏어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값으로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내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3. 약속의 땅으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그 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너희를 인도하고” 라는 말은 “보”( ) 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도는 분명히 들어갈 장소의 이동이 약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노아가 홍수 직전에 배를 완성한 후에 그와 그 식구들이 이동하여 배 안으로 들어가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이라는 한 장소에서 옮겨 하나님이 예비 하신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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