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동영상)
성경공부(Bible Study)
목사님칼럼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019-11-10 05:24:02 34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1-19

유진 중앙 교회 주일 오전 예배
11월 10일, 2019년
추수 감사 주일 예배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주님께서 생전에 주로 활동하신 지역은 그가 성장하셨던 갈릴리와 성전이 존재하였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 중간 지점 쯤에는 사마리아 지역이 갈릴리와 예루살렘 지역을 연결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시면서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만한 사건은 사마리아의 한 우물가에서 물을 깃던 한 여인에게 전도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늘 읽은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였습니다.
그 지역에 열사람의 나병 환자들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회 규범은 나병환자로 판명이 되면 가정을 떠나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에게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요즘 이볼라 감염자가 사회로부터 격리가 되듯이 그 당시의 나병은 치유의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감염이 확인되면 동네를 벗어나서 멀찍이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어야만 하였습니다.
같은 처지의 질병을 앓고 있던 환자들이 모이다 보니 열사람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부모 형제가 있는 평범한 가족이었습니다.
어느 날 피부에 나타난 반점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상 증세가 드러나면서 그 병은 불치의 나병이라고 판명되었을 때의 절망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같은 처지의 병을 앓고 있던 나병 환자들은 한 그룹을 이루어 오늘은 이 동네, 내일은 저 동네 언저리를 방황하면서 구걸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유대 사회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소식은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병자라도 고쳐 주시는 분이라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자신들도 그 예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고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잡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 열 사람의 나환자들이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중들을 헤치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설 수도 없었고 사람을 가까이 했다가는 돌팔매질을 당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서성이고 있던 사마리아의 한 촌에 찾아 오신 것이었습니다.
본문11-1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리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열 사람의 환자가 예수를 만날 수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일생 최대의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없습니다.
만날 수 없는 분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자신들에게 일어 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조차도 미쳐 이 열사람의 문둥병 환자들을 멀리 좇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 동안 멀리서 들어와만 왔던 그 예수를 바로 눈 앞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문둥 병자 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마주대고 의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록 약간의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였지만 큰소리로 외치기만 하면 틀림없이 예수께서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구 동성으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13절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외침에서 선생이라는 표현이 특별합니다.

원문 선생님이여 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권위를 담고있는 표현입니다.

단순히 선생님이라는 의미에 더하여 통치자 또는 지배자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빈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대답한 말에 같은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선생이여”라고 한 표현은 절대적인 순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절대자에 대한 최고의 존경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열 사람의 나병 환자들이 주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 그들의 심정은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드러낸 표현입니다.

열 명의 환자들은 예수님께 긍휼히 여기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본문의 “긍휼”이란 표현은 헬라어

이 단어는 “불쌍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이 환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버림받다 시피하여 본인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집을 떠나야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생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비극적인 이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까요?
하지만 그 동안 이 열 사람의 불쌍한 환자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가까이 찾아 갈 수도 없었습니다.
레위기 13장에 보면 나 환자로 판명이 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이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진 밖에 살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야 합니다.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저쪽에서 사람이 오면 이 환자는 먼저 큰 소리로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합니다.
이 외침을 들은 사람은 그 사람을 멀리 떠나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병이 지속되는 한 그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병에 감염된 환자 뿐입니다.
오직 죽음 만이 이들을 그 고통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에 해방시켜 줄 뿐입니다.

이 보다 더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너무나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동안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이 처지를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의 호소에 귀를 귀울여 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외면하고 다 떠나가지만 예수님 만은 그들의 소망이요 기대고 싶은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찾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 중에 질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열두 해를 혈류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나타나고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도 나타납니다.
38년 동안 한번도 일어서 보지 못하였던 앉은 뱅이도 나타납니다.
막 2장에는 들것에 들려 주님을 찾은 중풍병자도 나타납니다.

이들 환자들의 공통점은 소생할 희망을 다 놓쳐 버린 자들이란 것입니다.
요즘 처럼 의술이 발달하지도 못한 때라 이런 병에 걸리면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문둥병자들은 더욱 불쌍한 환자들이었습니다.
천별을 받지 않고는 걸리지 않을 병이라고 생각되는 저주의 병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어떤 불치의 병이라도 고쳐낸다는 소문이 자자한 예수선생님을 만나 호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그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그들은 한 음성으로 소리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외침을 들으신 주님은 먼저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눈길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을 멀리서 보자말자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고 도망치듯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하여 긍휼을 요청하는 나환자들에게 눈길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실 때 그 옆에는 두 사람의 강도들이 함께 사형이 집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강도가 주님께 간청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3:42-4“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일평생 동안 악한 일을 행하였던 흉악범의 최후의 순간에도 주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청을 물리치지 아니하셨습니다.

만일 이 열 사람의 환자들이 주님께 간청하지 아니하였다면 주님의 주목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눈길이 없었다면 고침받을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나님은 사람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본문의 열 사람의 나환자들의 애절한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살면서 고통을 호소하던 유대백성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시고 애굽을 탈충하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귀 기울여 주시고 눈길을 돌려주시는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제사장 들에게 몸을 보이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러 가던 길목에서 그 열사람의 나환자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을 까요?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제사장을 찾아가서 자신의 몸을 보여 병에서 나음을 받았음을 확인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3장은 제사장이 문둥병 환자들 진찰하는 자세한 절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이 나았을 때도, 병이 진행 중일 때도 제사장은 환자들을 판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율법대로 열 사람의 나환자들을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고침 받았음을 확인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열 사람의 나환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그 길로 제사장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제사장에게 도착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위대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던 나환자들은 길목에서 그들의 병이 나았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은 긍휼을 간청하던 환자들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간청하던 대로 주님은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17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이 열 사람의 문둥병자에게 절대로 필요하신 분이셨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아람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그에게 문둥병이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어떤 병이라도 고치는 선지자 엘리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예물을 싣고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의 집에 찾아와서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명령을 합니다.
요단강에 내려가서 강물에 일곱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선지자의 명령대로 요단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일곱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열왕기하 5:14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하나님의 사자 엘리사의 말대로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몸의 병이 떠난 것입니다.
거칠었던 나환자의 피부는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곱게 고쳐졌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죽은 자도 살려 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오늘 나에게 분부하실 때 그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어떤 병도 주님은 고치실 수있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육체의 병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심각한 질병도 능히 고쳐 내시는 분이십니다.

정신적인 아픔도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죄의 무서운 질병에서도 주님은 구원해 내십니다.

이 열사람의 나 환자들은 태어 날 때 각기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있었고 가정의 보살핌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불행스럽게도 나병의 공격을 받고 가정에서 좇겨나고 사회에서 버림받았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시고 다시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병에서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의 오염에서 정결하게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치유하시는 주님의 눈길이 여러분과 저에게도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로 달려 가던 열 사람의 나환자들은 가던 도중에 자신들을 괴롭히고 망하게 하였던 병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입니까?
그들은 기뻐 뛰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이제는 병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인 고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신들을 내 몰았던 불치의 병이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 사람의 나환자 중에서 한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 병이 떠난 줄을 안 순간 자기를 고쳐 준 그리스도를 순간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기의 병 고친 소식을 알게 되면 누구보다도 기뻐할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찾아 감사해야 될 분이 있음을 그는 알았습니다.
다름 아닌 주님이었습니다.

그는 열 일을 제쳐 놓고 그 길로 달려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신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15-1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였습니다.

그가 고침 받은 것에 대하여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쳐 주신 주님께로 일순간으로 달려갔습니다.
누구에게 보다도 먼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님이 그 장소를 떠나기 전에 달려가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주님을 발견하자 바짝 가까이 다가 갔습니다.
만일 그에게 아직 병이 사라지지 아니하였더라면 감히 주님께 그렇게 가까이 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놓고 자유롭게 주님께 가까이 다가 갈 수있었습니다.
16절에 기록된 데로,”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였습니다.

그가 취한 태도는 주님께 엎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리되 발 아래 엎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발아래 엎드린 다는 것은 몸을 완전히 바닥에 엎드림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가 얼마나 감사하였으면 완전히 몸을 바닥에 납작 엎드렸겠습니까?
“사례하니”란 말은 “감사하니”(thanked him) 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주님께 뜨거운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감격과 감사의 마음으로 주님께 온 정성을 다하여 사례하였습니다.

우리는 고침 받은 이 환자의 얼굴 표정이나 모습을 상상할 수있습니다.
최대의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였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그는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의 손에 지금 든 것이 있다면 무엇을 아끼고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 한 사람을 바라보셨습니다.
고침받은 나병환자 중 단 한사람 이방인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17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나머지 아홉 사람을 찾으신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들 아홉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침 받은 열 사람의 문둥 환자 중에서 고침 받은 오직 한 사람만이 주님께 찾아와서 사례하였습니다.
그 한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무시하던 이방인 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없신 여기던 그 이방인은 오히려 달려와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한 사람도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랑이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점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를 찾아와 사례한 자에게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은 다른 아홉의 고침 받은 사람들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한 음성으로 간청하였습니다.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움을 받고 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리낌 없이 가정을 찾아 갈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기다릴 집으로 친구에게로 달려가기 바빴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셨지만 다 허사였습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 온 그 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19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놀랍게도 이 환자는 육체적인 질병에서 고침 받은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선포는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께로 가던 중에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감사하고 기뻐하던 그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를 능히 구원하였습니다.

이 나병 환자는 육신의 질병에서 고침 받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영혼까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감사는 새로운 축복의 문을 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하라고 시켜서 마지 못해 고맙다고 인사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런 정도의 감사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죄의 병으로 처절하게 타락되어 내일의 희망도 없던 우리를 건져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은 소중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십니다.
.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온 이방인만이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을 낫게 했음을 믿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절절한 감사는 바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구원의 문을 열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사하는 생각이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삶을 풍성하게 하고 아름다운 구원의 열매를 맺게하는 마음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언제나 마음으로 감사하며 산다고 말합니다.
감사는 구체적인 행동이 동반됩니다.
아마도 주님을 찾아 오지 않은 다른 아홉 사람들도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의 이방인은 행동으로 그 감사함을 표현하였습니다.
주님께 달려왔고 발 앞에 엎드려 사례하였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감사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이 되기를 진심을 바랍니다.

여기 강단 위에 지난 주부터 몇가지 가을 열매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새벽마다 볼 때 마음에 뭉클한 감사의 정이 솟곤했습니다.
여러 교우들께서 열매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 작은 정성들이 주님 앞에 아름답게 상달 될 것을 확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감사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는 주님의 응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3년 5월 7일 오스트레일리아 SBS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한 동양여성이 백발이 성성한 한 외국인을 만나 큰 기쁨을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이현서(33) 씨라는 탈북여성이었고, 백발의 남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인 딕 스톨프 씨였습니다.현서 씨는 17살때였던 2009년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에서 10년간 숨어살며 감옥에 갖힌 가족들을 북한에서 빼내려 했습니다.
마침내 북한 탈출에 성공한 그녀의 가족들은 중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한국대사관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라오스 경찰에 불법월경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은 벌금 1,000달러를 기한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강제북송될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현서씨는 가족을 경찰유치장에 둔채 나와야 했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50달러도 없었습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있는 현서씨에게 한 외국인이 다가왔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의 딱한 사정을 들은 외국인은 자기가 가진 1,000달러를 이현서 씨에게 주었다. 그는 바로 라오스를 배낭여행 중이든 여행자 딕 스톨프 씨였습니다.그의 도움으로 마침내 현서 씨 온가족이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TV나 신문을 통해 4년동안이나 스톨프 씨의 행방을 수소문해왔습니다.
결국 호주의 SBS-TV의 협조로 그를 찾을수 있었습니다.
이현서 씨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서울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먼 거리를 날아와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언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진 빚도 평생 다 갚을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물며 주님께 우리가 받은 은헤는 가히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높다고 합니다.
죄와 사망으로 영원히 멸망받을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와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시편 116편 12-14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청교도의 신앙과 추수 감사절
  기드온의 삼백용사

13명
83403명

※유진 한인 중앙장로교회 Internet Explorer 에서 최적으로 운영됩니다※
      Address : 3360 Game Farm Rd., Springfield, OR 97477 U.S.A.
      TEL : 541-741-9649 (교회, 목사관 ) / 541-510-5794 (교역자 핸드폰)
      E-mail : byungjun48@hotmail.com
      CopyRight ⓒ 2008 - 2020 All Rights Reserved By 유진 한인 중앙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