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동영상)
성경공부(Bible Study)
목사님칼럼

 

:

향유를 부은 여인의 감사
2019-11-24 12:41:42 13  

 
향유를 부은 여인의 감사
눅 7:36-50

유진 중앙 교회 주일 오전 예배
11월 24일, 2019년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사건은 마태복음 26장 6절 -13절에 기록된 사건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동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 기록된 사건은 장소가 베다니라는 곳에서 일어난 것인 반면에 본문의 사건은 갈릴리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사람의 이름을 마리아라고 밝히고 있지만 본문에서는 이름이 없고 다만 “한 죄인”이라고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비록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보여주는 행위는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시몬이라는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 보다도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라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자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분리 주의자란 말 처럼 그들은 부정한 것에서는 분리해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충실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율법 대로 안식일 지키는 일에 철저하였고, 정결한 음식만을 챙겨 먹음으로 자신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구별된 자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존경과 신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들은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를 하였고 십일조 생활에도 철저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에는 니고데모와 같이 주님께서 칭찬하셨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바리샌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점점 형식화 되어 감으로 형식 주의와 외식하는 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에 어느 날 가셨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 살고 있던 바리새인 한 사람이 주님을 초대하고 융숭한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당시에 널리 알려졌던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함으로 자신이 그 지역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고 싶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청하지도 않은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바리새인이 살고 있던 그 동네의 주민이었지만, 이름이 무엇인지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를 묘사한 말 중에 “죄인인 한 여자”(37)라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이 못되는 사람이 자기 발로 찾아 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자리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좇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예수님을 모신 자리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 사람을 내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속으로 생각하기를 위대한 선지자로 알려지고 있는 이 예수가 그 여인을 알아보고 물리쳐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 여인이 다가와서 눈물로 발을 씻고 그 여인의 긴 머리털로 발을 닦아도 그대로 보고만 계셨습니다.

그 여인은 가지고 온 향유를 전부 쏟아 주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예수님을 집을 초청한 그 바리새인은 속이 부글 부글 끓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진짜로 이 예수가 선지자가 맞다면 지금 이 자리에 찾아와서 눈물 흘리며 머리털로 발을 닦는 이 여자가 얼마나 추한 죄인 인가를 알 것이고 그 사실을 안다면 당장에라도 좇아 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반은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주님 가까이 다가와서 눈물을 쏟고 머리털로 발을 닦아도 좇아 내기는 고사하고 전혀 싫어하는 기색조차 없는 것입니다.
바리샌은 답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앓이를 할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바리새인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입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에게 탕감 받은 자의 비유의 말씀을 들려 주심으로 이 여인과 바리새인의 마음을 대조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뜨거운 눈물을 쏟고 향유를 부은 여인의 감사에 대하여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죄를 탕감 받음을 눈물로 감사하였습니다.

눈물은 아무 때나 흐르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요동칠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은 사람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밖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마음에 큰 감동을 받을 때 사람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아주 슬픈 일을 당할 때 눈물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주 기쁜 일을 맞이할 때도 눈물이 솟아 납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실로 수십년 전에 팔아 넘긴 동생을 만났을 때 그들은 할 말을 잊었습니다.

Genesis 45:1-14 2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도 대성통곡하였고 그의 형제들도 울었습니다.

이 요셉과 그 형제들의 눈물 속에는 온갖 인간의 감정이 베어 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아픔도, 슬픔도, 회한도 후회도 함께 깊이 녹아 든 감정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이 무명의 여인이 주님 앞에서 흘린 이 눈물은 온간 아픔의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질러 온 죄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아 온 서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가 성장해 온 불우한 시절에 남들이 겪지 못한 온갖 모진 고통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러 감정의 눈물 중에서도 이 여인이 흘린 눈물은 무엇 보다도 죄인인 자신이 주님께 받아들여 지고 용서함을 받게 된 데 대한 감사의 뜨거운 눈물이었음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을 싫어하던 바리새인에게 주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 속에 분명하게 이 여인의 감사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비유는 두 사람의 빚을 진 사람에 관한 비유입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의 빚을 졌습니다.

데나리온은 로마 시대의 은으로 된 화폐의 단위였습니다
로마의 은화. 한 데나리온의 무게는 3.8g이며, BC 268년부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시대까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많이 언급된 은화로, 한 데나리온의 가치는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백데나리온의 가치는 남자 장정이 500 일 동안 일을 해야 받을 수 있는 어마 어마한 액수의 빚입니다.

더구나 연약한 한 여성이 이 큰 빚을 지고 있었는 데 그 빚을 준 사람이 가상히 여겨서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평생 빚에 눌려서 숨도 못쉬고 살아 가야 했어야 할 이 여인이 얼마나 감격하였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오백일 분에 해당하는 돈이 아니라 그 오백분의 일에 해당되는 100 달러를 손에 쥐어 준다고 해도 그 고마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께서 하신 이 비유는 물론 돈을 두고 하는 비유가 아닙니다.
그 여인이 그동안 저질러 왔던 엄청난 죄를 용서 받은 데 대한 감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죄의 빚 때문에 이 여인은 마을에서 온갖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해 왔습니다.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마치 수가 성의 우물가에 물을 긷기 위하여 아무도 없는 더운 한 낮에 우물가에 가만히 나왔던 그 여인 처럼 죄인인 이 여성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 하는 자신의 비참한 자신을 주님께서는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받아주시고 그 엄청남 무게의 죄를 다 용사해 주셨습니다.

그는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부였습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그 마을에 오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일을 제쳐놓고 사람들의 질시도 개의치 아니하고 바리새인의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주님의 발 앞에 흘렸습니다.
이것음 백마디의 말 보다도 더 힘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감사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이 사실을 알 턱이 없습니다.

상대하기도 싫은 여인이 자기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 온 것도 못 마땅하고 더구나 초대한 주님의 발에 눈물을 쏟는 것이 싫었습니다.

당장에라도 밖으로 내 좇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여인의 마음 속 깊이에서 흘러 넘치는 감격의 눈물의 의미를 너무나 잘 헤아리셨습니다.

이 여인은 그의 머리 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얼굴과 머리는 한 인격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증명 사진을 찍는 부분이 바로 얼굴과 머리임은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성경에서도 머리는 그 사람의 존귀와 명예를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11: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삼손에게 머리 카락은 그의 힘과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날 그는 힘도 잃었고 명예도 잃어 버렸습니다.

구약시대에 머리카락은 육체적인 힘과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머리채를 잡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를 잡는 것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타국을 정복을 했을 때, 그 나라의 왕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5에도 나실인은 서원하는 동안 머리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만약 자르면 부정을 타고, 영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고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귀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머리카락 숫자를 헤실 만큼 자상하게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며 성도의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는 깊은 사랑을 알 수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여인의 머리는 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미용실은 머리를 손질하는 곳입니다
보다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은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자존심을 다 내어 버릴 때 머리를 손질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랑하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날 때 여인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울었습니다.
큰 슬픔과 아픔을 머리털로 강력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을 찾아 온 이 여인이 주님께 흘린 눈물을 닦아 낸 것은 수건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머리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께 받은 그 큰 감사를 자신의 모든 명예와 존귀의 상징인 머리털로 발을닦음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온 몸을 다하여 주님을 섬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기록한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서 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의 독자 이삭의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몸을 사자의 굴 속에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몸을 입게 하셨습니다.
마음으로만 이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그 몸을 십자가에 달아 제물로 바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몸으로 주님을 섬기는 제사입니다.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 그 바리새인은 음식은 많이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물은 고사하고라도 발 씻을 물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먼지 묻은 주님의 발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음식 정도는 대접할 수있었지만 주님의 발에 입을 맟춘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 꺾는 일일 뿐 아니라 감히 존경 받는 자신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이 보실 때는 이 여인의 감사가 바리새인이 주님께 표현한 감사 보다도 훨씬 더 큰 감사였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보실 때 과연 어떤 평가를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사는 몸으로 드리는 제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도를 섬기는 일에는 반드시 몸으로 드리는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매 주일 예배 후에 준비하는 중식을 위하여 구역의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헌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저희 교회는 일년이면 여러 차례의 봉사활동을 합니다.

지난 가을에도 여섯 번에 걸친 운동장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봉사의 현장에 가야 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러 시간을 그 곳에서 몸으로 수고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를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께서 기쁜 마음으로 헌신해 주셨습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이곳에 계속해서 사시는 분들이 아니라 잠시 후에는 귀국하시는 집사님들께서 기쁨으로 참가해 주신 일입니다.

매 주일 예배를 위하여 찬양팀 여러 학생들과 성가대원들께서 참으로 많은 수고를 하고 계십니다.
이런 봉사는 몸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오는 정월의 제21회 연례 음악회를 위하여서도 매 주일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귀하게 받으신 줄 믿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여인은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흔히 사용되는 감럄유는 그리 값비싼 기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가지고 온 향유는 말 그대로 향수와 같은 것입니다.
아주 비싼 것이고 여인이 소중하게 아끼고 있던 것을 그릇 채로 가지고 와서 아낌없이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아낌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드릴 때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감사의 마음이 이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감사한 것은 그의 많은 죄를 용서함 받은 데 대한 감사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많은 빚을 탕감 받는 것과 같은 마음의 감사였습니다.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 지는 자세하게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 여자는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던 죄인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던 죄인이었습니다.
가까이 하기를 꺼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들어 오는 것 조차 싫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37절에는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a woman who had lived a sinful life…”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이 여인이 어쩌다가 한 두 번 실수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죄를 지으며 살아 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알고도 모르고도 그는 죄를 지으며 그동안 살아왔습니다.

이 죄를 용서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의 상태로 죄를 지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죄가 항상 그의 집 앞에 엎드려 있는 것 처럼 죄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은 용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사죄의 축복을 하셨습니다.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죄 속에서 죽어 갈 수 밖에 없었던 이 사람을 용서하시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가 얼마나 컸겠는 가를 짐작할 수있습니다.

그는 이미 마음 속에 뜨거운 감사를 품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털로 발을 닦음으로 감사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였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모든 재산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삶을 유추해 보건데 그는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그가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면 바로 값진 향유였습니다.
이 향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 지는 모르지만 가난한 살림에 이 정도의 가치있는 향유를 얻기 위하여 그는 무척이나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 만은 지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생을 마감하는 그날 까지라도 지키고 싶었던 재산 목록 1호라고 할 만한 이 향유를 그는 아낌없이 들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 향기가 집안에 퍼질 때 그것은 바로 이 여인의 감사의 향기가 함께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물질이 꼭 함께 할 필요가 있겠는 가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사람의 마음과 물질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없음을 알 수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위하여는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는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자녀들에게는 아낌없이 먹이고 싶고 입히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이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가장 소중한 향유는 내가 사용하는 것 보다도 주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일년간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 사죄함 받는 속죄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없이 큽니다.

이 은혜를 본문의 여인 처럼 마음으로부터 눈물의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소중한 몸을 드려 헌신으로 감사하기 바랍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소중한 물질로 주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신앙의 균형 -김경재 목사님 설교
  청교도의 신앙과 추수 감사절

25명
81173명

※유진 한인 중앙장로교회 Internet Explorer 에서 최적으로 운영됩니다※
      Address : 3360 Game Farm Rd., Springfield, OR 97477 U.S.A.
      TEL : 541-741-9649 (교회, 목사관 ) / 541-510-5794 (교역자 핸드폰)
      E-mail : byungjun48@hotmail.com
      CopyRight ⓒ 2008 - 2019 All Rights Reserved By 유진 한인 중앙장로교회